권오찬
#을지로3가 #이남장 #설렁탕특
* 한줄평 : Since 1977, 을지로 이남장의 스테이크 설렁탕
1. 지금 MZ 세대에게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는 조선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평지가 아닌 황토로 된 낮은 언덕이었는데, 멀리서 보면 구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구리개>라 불렸었다.
2.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여 표기에 따라 황금정통으로 불리다가 1945년 해방 이후 화교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따 ‘을지로’로 명명되었다.
3. 을지로가 본격적인 상업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한국 전쟁 이후 사대문 안 전후 복구를 위한 철공소와 공구상, 자재상들이 자리잡았고, 1960~70년대 영화 산업의 발달로 인쇄산업의 메카가 되면서부터 이 거리는 한국의 산업 근대화에 있어 뺴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4. 돈이 넘쳐나던 거리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사람이 모여들면 이들을 위한 음식 문화 역시 발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을지로에 노포가 유독 많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간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5. 힙하디 힙한 새로운 식당들이 들어선 을지로에 터줏대감처럼 굳건히 버티는 식당 중 내가 제일 애정하는 곳이 바로 1977년 개업한 <이남장>이다.
6. 서울 곳곳에 이남장이라는 식당이 분점 포함 10여군데 이상 성업 중이지만, 유독 이남장은 본점과 분점의 음식 편차가 꽤 크다.
아무래도 이남장 본연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선 반드시 을지로 본점을 바ㅏㅇ문해야 한다. 맛도 맛이지만, 1970년대 황금기를 누렸던 을지로에서 피어난 그 시절의 공간, 그 당시 설렁탕을 끓여냈던 조리법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의 차원이 다르다.
7. 전국 팔도 향토 음식을 섭렵하러 다닌 내 입장에서 ‘죽기 전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음식‘을 추천하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음식이 바로 이남장의 <설렁탕 특>이다.
8. 일반 설렁탕이 13천원, 설렁탕 특이 20천원인데 설렁탕 특에는 일반에는 들어가지 않은 우설과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스테이크> 분량의 등심이 제공된다.
9. 큼지막한 등심이 1~2덩이, 넓게 잘라낸 우설 한점, 부드러운 양지고기가 제법 실하게 들어있다. 등심과 우설은 한입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크다보니 집게와 가위가 제공되는데 이는 단순한 편의를 넘어 1970년대 풍요로웠던 을지로의 황금기를 떠오르게 한다.
설렁탕 국물의 깊은 감칠맛, 부드러운 등심, 녹아내리는 양지, 고소한 우설이 어우러지니 이 뚝배기 한 그릇이 어떻게 50여년을 버텨왔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