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한
#고래 이번 울산 트레킹 여행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고래고기'를 파는 식당이었다. 지난번에도 해파랑길을 걸으러 울산을 찾았지만, 그때 주제가 '트레킹+울산 양조장 투어'였다면, 이번 여행의 주제는 '트레킹+향토음식'이었는데 수천 년간 울산 사람들의 입맛을 지킨 고래고기를 한번 접해보고 싶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고래 식용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산업포경이 금지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고래잡이가 중단되었고 고래고기 음식점도 퇴조하게 되었지만,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역사이자 우리 향토음식인 고래고기가 젊은 사람들에겐 막연한 미지의 영역 혹은 알지 못해 점차 잊혀 가는 음식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 접해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나면 더 오래 명맥이 이어질까 싶어 내려간 김에 식당에 들러 맛을 보았다. 현재 장생포항에는 고래고기를 파는 식당이 여러 곳 있는데,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최종 '고래고기 원조할매집'을 가기로 했다. 고래고기 원조할매집은 1951년 개업 이래로 3대째 고래고기 요리를 전수해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고래고기 요리를 개발한 만큼 맛에 대해서는 전국 미식가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고, 밍크고래를 전문으로 취급하기에 고래 특유의 향이 좋고 각각의 부위별 별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해 선택하게 되었다. (네이버 참조) 메뉴 선택을 두고 수육과 모둠 사이에서 약간의 고민을 했다. 일명 고래 한 마리라고 불리는 모둠은 수육, 육회, 생고기, 우네, 오베기를 고루 맛볼 수 있는 메인메뉴였고 수육은 껍질, 갈빗살, 내장 등을 삶아 내는 메뉴였는데 고래고기 경험이 없는 본인이 먹기에 어떤 것이 부담이 없을지 고민하다 사장님께 추천을 부탁드렸다. 젊은 여자 혼자 고래고기를 먹으러 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인지 좀 놀라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메뉴 설명을 잘 해주셔서 바로 선택할 수 있었다. 최종 선택은 수육도 함께 먹을 수 있는 모둠 小. 주문을 넣으니 기본 찬 세팅이 이어졌는데 부추김치와 배추김치, 샐러드, 양파·고추·마늘, 적초생강, 무장아찌가 나왔고 기름이 들어간 고추장, 쌈장, 초고추장, 소금장과 젓갈이 찍어 먹을 소스로 함께 나왔다. 곧이어 고래고기가 나왔는데 부위별로 예쁘게 담겨 나와 정갈해 보였다. 고래고기는 처음이라 접시에 담겨 있는 고기가 어느 부위인지 또 어떤 소스에 찍어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여자 사장님께서 이 고기가 어느 부위이고 어느 소스에 찍어서 먹으면 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셔서 조금은 편하게 접할 수 있었다. 설명을 듣던 중 "나중에 어떤 부윈지 잊어버릴 것 같아요ㅠㅠ"라고 했더니 고래고기 부위 설명이 나와 있는 팸플릿을 가져다주셔서 식탁 한쪽에 펼쳐 놓고 특징을 참고하며 맛보기 좋았다. 생고기는 고추장류 수육은 소금, 젓갈류랑 먹으라고 하셨는데, 먹다가 입에 잘 맞는 소스가 있으면 그냥 그 소스와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개인 입맛에는 생고기는 고래고기 특유의 향이 좀 느껴져 초고추장과 먹는 게 편했고, 수육은 감칠맛 나는 젓갈에 찍어 먹는 게 좀 더 맛있었다. [육회] 고래고기가 처음인 본인은 제일 먼저 육회를 맛봤는데, 육회에는 배, 당근 등 다양한 채소가 들어가고 달큰 짭조름한 육회 소스가 어우러지다 보니 생고기나 수육에 비해 먹기 편했다. 생고기에 야채와 소스를 넣고 버무리다 보니 맛이 소고기 육회와 비슷했는데, 소스가 주는 익숙한 맛 때문인지 거부감도 없었고 고래 특유의 향이 소스에 가려져 입문자가 먹기에도 편한 것 같았다. [생고기] 일단 생고기 식감은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었다. 고래고기를 먹기 전 고래고기에는 특유의 향과 비린 맛이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고래고기 특유의 향이 뭔지 궁금해 찾아보려고 의식하며 먹다 보니 생고기에서 그 향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부위에선 사람들이 말하는 고래 향이 아예 느껴지지 않거나 느껴져도 희미한 수준이었는데, 생고기는 특유의 고래 향이 상대적으로 잘 느껴졌다. 그런데 엄청나게 강하거나 역한 건 아니었고 '아, 이걸 보고 특유의 향이 있다고 하는구나.'인지하고 갈 정도의 수준이었다. 고추장에 기름이 들어간 소스, 초고추장 소스 둘 다 찍어 먹어봤는데, 기름이 들어간 소스와 함께 먹으니 기름의 고소함이 느껴져 나름 맛이 괜찮았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익숙한 맛이 나서 상대적으로 먹기 편했다. 향에 민감한 분이나 고래 특유의 향이 불편한 분이라면 초고추장에 고기를 찍어 먹는 게 나은 것 같았다. [우네] 우네는 고래의 가슴살과 배폭살을 얼린 것인데, 얇게 썰어 끓는 물에 여러 번 데워 지방과 소금 제거 후 찬물에 헹구어 냉동 보관을 한다고 한다. 맛 특징은 구수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본인은 구수는 아니고 씹을수록 고소한 것 같았다. 육회 생고기가 부드러웠다면 이 부위는 좀 질깃했는데, 씹을수록 고소해 개인적으로 잘 먹었고 생고기에서 느껴지던 특유 향도 덜 나 소스 없이 그냥 먹어도 괜찮았다. [오베기] 오베기는 고래꼬리 부위인데, 소금에 절인 꼬리와 지느러미를 얇게 썰어 살짝 데친 것으로,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 나는 이 부위 식감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데, 오돌오돌 한 식감이 재밌었고 맛보단 식감이 특징인 부위인 것 같았다. [수육 / 살코기] 개인적으로 수육 중에선 살코기 부위가 가장 맛있었는데, 소금에 찍어 먹는 것도 맛있었지만 젓갈과 먹으니 감칠맛이 돌아 좀 더 맛있었다. 비슷한 느낌을 찾자면 젓갈에 찍은 족발 살코기? 같은 익숙한 맛이었다. [수육 / 백피,흑피?] 음식이 나왔을 때 껍질은 맛이 다 다르다고 들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했었다. 껍질은 고래 등 부분은 검은색, 배 부분은 흰색을 띠고 있는데, 살코기가 많이 붙지 않은 살색 지방 부위는 씹을수록 고소했고 처음 씹었을 때 약간 꼬들대는 식감이 좀 느껴졌는데 계속 씹다 보니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꼬들꼬들한 식감이 껍데기에서 나오는 줄 알았는데 먹다 보니 아닌 것 같았고, 비슷한 느낌을 찾다 보니 편육과 생선 껍질 묵을 잠깐 떠올렸으나 이것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비슷한 느낌을 못 찾아 그냥 사르르 녹아내리는 맛으로 정리. 먹다가 느끼하면 김치랑 먹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 정도까지 막 느끼하진 않았고, 김치와 먹는 것보단 오히려 적초생각이나 무장아찌랑 먹는 게 입도 개운하고 입안이 한 번씩 싹 정리가 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적초생강과 먹는 게 제일 좋았다. 본의 아니게(?) 식사하며 주워들은 바로는, 나이 든 고래가 식감이 꼬들해 맛있다고 하며(질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함) 어린 고래는 부드럽다고 한다. 고래고기가 생각보다 입에 맞고 맛있어서 식사를 마친 후 예정에 없던 고래 박물관을 가보았는데, 고래고기를 먹고 와서 그런지 박물관 관람을 하시는 어르신의 이야기 '옛날 부산에서도 고래고기를 많이 팔았다'는 그 이야기가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배가 한 번 들어오면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판매를 했다고. 울산은 해방 후에 근해 포경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던 도시이다. 고래고기 음식점도 1970년대를 정점으로 호황을 누렸으나,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상업포경 금지를 결정하면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의 고래잡이가 중단되었고 장생포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던 고래고기 음식점도 퇴조하게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 퇴조를 막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 접해본 사람이 하나라도 더 든다면 우리네 향토음식의 명맥이 조금은 더 오래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 부족한 글이지만 리뷰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