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창
베이스 프라이스가 낮아 보이는 우리나라 코스 음식. 국악에 사용하는 음을 율이라 하고 열두개의 율이 있다. 황대태엽고중유임이남무응. 이를 빗대어 열두달 제철 식재료로 다양한 한식의 맛을 연주한다는 식당. 솔깃하다. 졸업시즌인 2월의 상차림. 돼지감자를 아주 가늘게 채썰어 튀겨낸 한입거리. 폭신하게 입 안에서 눌러 앉는 식감이 좋다. 제철 생선회는 숭어를 채썰어 깻잎채와 무쳐냈다. 채썬 묵은지와 막장을 컨디먼츠. 이게 아무즈부슈인 줄 알았다. 생선회 뭉치가 어찌나 작은 지. 입맛 다시다가 만. 냉이꼬막무침. 제철인 꼬막을 익혀 페스토를 발라 냉이를 얹어 일렬로 다섯점 낸다. 냉이의 향이 좀 아쉽다. 떡볶이 떡을 잘게 잘라 고추다짐과 김부각을 얹었다. 노른자 지단과 함께 놓아 설날의 기분을 냈다. 성게알어간장국수. 이게 묘한데 식당 시그니쳐라고 하면서 옵션이다. 안 시킬 사람이 있을까. 자연히 11,000씩 추가됨. 스파게티니면을 익혀 어간장소스에 얹고 성게소를 한 점 딱 얹었다. 구운 레몬과 노른자소스가 컨디먼츠. 성게소는 아무 향이 없는 하급품.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급 후회. 옵션인 이유도 성게소에 있나 ㅎ. 표고를 올린 메생이닭구이는 그대로 먹으면 좋겠구만 거기에 육수를 쭉 들이 붓는다. 내가 고른 항정살조림은 추가 차지를 낸다. 물컹한 식감에 샤인머스캣편과 딜을 얹었다. 굳이 항정살이 아니어도 될 듯. 항정살의 아삭한 식감이 없는 동파육 같은 요리. 이것도 후회. 아귀 수육. 쫄깃한 흰살덩이와 까만 껍질. 뜨끈한 육수에 좋았는데 향 없는 성게소가 점점이 올라 앉아 감점. 쓸데없는 군더더기. 여기서 추가 차지를 내고 채끝을 시킬 걸. 고기는 뭐 실패할 일이 별로 없으니. 여기까지 다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는데. 능이전복밥. 이게 모든 실점을 만회했다. 질척거리지 않는 고슬고슬한, 비빔밥에 딱 좋은 밥. 밥이 맛있었다. 찐전복을 얇게 저몄고, 밤채, 파채, 은행, 능이버섯과 해초를 섞어 전복내장소스로 비벼 먹는데 그 고소한 감칠 맛이 일품이었다. 9회말 쓰리런 홈런. 추사40 원샷으로 세리머니. 다른 친구들의 표정으로 보아 우니 반판 시킨 친구보다 직화 삼겹시킨 친구 표정이 밝아 보였다. 스테이크 덮밥 시킨 친구는 미소를 보였고. 보기에는 노랗고 뽀얀 맛없는 성게소는 정말 애증의 물건이다. 그래도 성게소 한판 시킨 친구가 없어 다행. 이날은 정말 성게소가 별로였다. 자동차 살 때 베이스 프라이스 보고 골랐다가 이 옵션 저 옵션 넣으면 차값이 훌쩍 뛰는 것처럼, 이젠 밥도 자동차처럼 파는 시대가 되었다. 기본 코스식대가 저렴하다고 싼값에 현혹되지 말지니 지혜롭게 최후 금액을 미리 계산해 보고 주문하는게 좋다. 뒤통수 맞기 싫으면. 맛난 우리나라 술과 고슬한 밥만이 열일 했다.